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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사람들에게 사랑받는가? [제528호]
2019/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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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사람들에게 사랑받는가?  “이끄는 사람들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다”라는 가르침을 들어보았는가? 아직도 이런 이론을 가르치는 곳이 많다. 하지만 진실은 그렇지 않다. 리더인 당신을 붙들어 줄 친구가 있어야 한다. 기댈 수 있는 사람, 시절이 좋을 때만이 아니라 괴롭고 힘든 순간에도 지지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멋지다‘라고 포장된 담배를 피우는 이미지가 좋지 않은 것처럼 사람을 가까이하지 못하게 하는 근엄한 리더십의 이미지는 적절하지 않다. 담배가 끝내는 사람을 죽이듯이 고독한 리더 역시 죽고 말 것이다.  사울의 관계사울의 삶을 보면 그와 가까운 관계에 있던 사람이 없었다. 사울을 선전하고 깊이 존경하기에 그와 동고동락한 사람이 없었다. 목숨을 걸고 그를 따랐던 인물이 있었기에 이 점은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두 사람이 떠오르는데 사울의 군대를 이끌었던 아브넬과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다. 그러나 서울과 그를 섬긴 사람 사이에 깊고 뜨거운 우정의 끈이 있었다는 성경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다윗의 관계다윗은 매우 달랐다. 풍성하고 깊은 관계를 맺을 줄 알았다. 그를 소중히 여긴 사람이 놀랍도록 충직하게 그를 따랐다. 그는 사람이 가까이 다가오게 하고 관계를 소중히 여겼을 것이다. 당신이 왕이거나 대통령이거나 권력자일 때는 누가 당신의 친구인지 쉽게 알아볼 수 없다. 누구나 잘나가는 사람과 친구가 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그러나 일이 어렵게 꼬일 때는 누가 당신의 진정한 친구인지 알아볼 수 있다. 당신이 직장을 잃고, 권한 있는 자리에서 내려와 더는 실권이 없을 때 누가 당신의 진정한 친구인지 명확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다윗을 정말 아껴서 권력의 자리뿐만 아니라 심지어 목숨까지 내놓고자 했던 사람이 많았다. 사무엘하 23장에는 다윗의 용맹한 세 용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다윗은 블레셋 사람들의 요새 앞에서 꼼짝달싹 못 했다. 그때 다윗은 베들레헴 우물에서 길어온 물을 마시고 싶다는 소원을 내비쳤다. 그 땅에서 블레셋인을 몰아내고 왕으로서 약속을 지키고 싶다는 다윗의 갈망에 대한 표현이었다. 이때 세 용사는 다윗을 위해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감행했다. 얼마나 위험하든 다윗이 원하기만 하면 자신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확신을 주고 싶어했다. 그들은 어렵게 블레셋의 진영을 뚫고, 우물에서 물을 길은 뒤 다시 블레셋 진영을 넘어 다윗에게 돌아왔다. 정말 용감무쌍한 행동이었으며 다윗에 대한 큰 사랑과 헌신을 나타내는 행위였다. 다윗은 자신이 받은 것이 그냥 물이 아니라 성수, 곧 거룩한 물임을 알았다. 두 손으로 잔을 잡고, 측근 가운데 이렇게 고상한 용기를 지닌 사람이 있음을 감사를 드린 뒤 그 물을 여호와 앞에 경외의 제사로 부어 드렸다. 세 용사가 사랑하고 헌신하는 마음으로 거룩하게 행했음을 알았기에 그렇게 한 것이다. 그 물을 자기가 마신다면 그들의 희생을 값싸게 만드는 셈이었다. 그 대신 그 물을 여호와 하나님에게 드림으로써 비록 주군을 위해 물을 길어 왔으나 실은 그것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임을 세 용사가 자각하게 했다. 당신을 위해 일하는 사람은 이와 비슷한 일을 하는가? 당신을 위해 모든 것을 걸고 모험할 만큼 당신을 사랑하고 존경하는가? 신뢰하는 사람, 깊이 마음 쓰는 사람, 자기를 사랑해 준 사람을 위해서만 이런 모험을 감수할 수 있다.다윗에게는 빼놓을 수 없는 또 한 사람이 있다. 바로 요나단이다. 왜 요나단이 다윗을 아꼈는지 자세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그가 다윗을 아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다윗과 요나단 두 사람 모두 용맹한 전사였다. 다윗만큼이나 요나단도 진실하고 훌륭한 사람이었고 겉과 속이 같았다. 또 그는 충성심이 강하고 올곧으며 용감했다. 다윗의 편을 들기 위해 아버지를 속이며 맞선 자가 요나단이었다. 요나단은 정직한 화해자 역할을 하면서 아버지와 친구 다윗을 다시 하나가 되게 하려고 애썼다. 그는 그것이 모든 사람의 유익을 위해 가장 좋은 선택이라고 믿었다. 요나단은 아버지도 친구 다윗도 모두 사랑했다. 가장 놀라운 점은, 다윗이 자기를 대신해서 왕위의 권력과 영광을 차지하게 된다는 사실에도 요나단은 조금도 마음 상해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사실을 알고도 질투심에 몸을 떨지도 않고, 평안한 마음으로 당연하게 여겼다. 그는 정말 자기보다 다윗을 더 사랑했다!다윗을 깊은 존경심과 사랑으로 섬긴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는 이 외에도 많다. 자기가 이끄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섬기는 리더는 그들에게 이런 감정을 불어넣는다. 당신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사랑을 얻는 방법을 알고 싶다면 아주 간단하다. 먼저 그들을 사랑하라. 하나님도 우리에게 그렇게 하셨다.우리는 서로 그리고 하나님과 깊고 오래가는 우정을 주고받으려고 지어진 존재이다. 우리에게는 이런 깊이 있고 지속되는 우정이 필요하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고통과 낙담, 실패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 이런 우정이 필요하다. 우리 삶에 좋은 일이 일어날 때를 기념하기 위해 이런 우정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당신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은 당신을 어떤 사람이라고 느끼는가? 당신에게 깊은 존경과 사랑을 표하는가? 당신을 그냥 참아 주는가? 아니면 일자리를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또는 더 나쁜 일이 생기지 않게 하려고 참고 당신을 위해 일하는가? 사울과 다윗 가운데 당신은 누구의 리더십을 더 닮았는가?     - 위의 글은 도서출판 디모데의 신간, 제인 오버스트리트의 『리더인가 보스인가』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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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화된 영혼, 영화된 육화 [제527호]
2019/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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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화된 영혼, 영화된 육화 우리는 늙어갈수록 자신의 참 모습을 현재 시제로 알아야 한다. 그런 지식을 얻으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우리는 어떤 의미에서 둘로 나누어진 존재이다. 즉, 우리는 물리적 몸 안에서 그 몸을 통해 살아가는 인격적 자아이다. 몸의 기운과 능력에 의지하여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지만 동시에 몸의 제약 때문에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일도 많다. 육체는 우리가 해야 할 많은 필수적 행위를 거듭 요구한다.육체는 물리적 기술을 배울 수 있다. 물론 어느 기술이든 그것을 숙달하려면 정신노동도 수반되어야 한다. 예컨대 스포츠를 위한 기술, 수술하는 기술, 차를 운전하고 비행기를 조종하는 기술 등을 생각해 보라. 이와 비슷하게 영혼도 논리나 연산 같은 정신적 기술을 배울 수 있다. 또한 악기 연주처럼 영혼과 육체가 한데 어우러지는 기술도 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 사상가들은 인간을 육화된 영혼이자 영화(靈化)된 육체로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당연하고도 통찰력 있는 말이다. 영혼과 육체는 별개이면서도 서로 분리될 수 없다. 출생부터 죽음까지 철두철미하게 서로 맞물려 있다.예수님이 나시기 수세기 전에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육체가 우리의 성장을 제한한다고 보았다. 즉, 몸은 감옥과 무덤 같은 것이고 우리의 참 존재인 영혼은 그 몸 안에 갇혀 있다는 것이다. 플라톤 이후로 많은 사람이 그런 비슷한 개념을 받아들였다. 그래서 그들은 행복이 증대되려면 결국 육체에서 해방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거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성경에 근거한 우리의 믿음이 다음 두 가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1) 하나님의 아들이 성육신하셨다. 삼위일체의 제2위 하나님이 친히 인간이 되셔서 몸을 통해 사셨다. (2) 예수님이 부활하여 끝없는 삶에 들어가셨는데, 그분의 영화된 이성도 그 영생의 영원한 일부를 이룬다. 이제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도 몸의 부활로 풍성해질 그날을 고대한다. 그날이 오면 육체도 영혼도 근본적으로 새롭게 변화될 것이다. 그 소망대로 우리는 장차 변화된 육체 속에 다시 심겨져 영원히 몸 안에 살 것이다. 재창조된 세계 질서 속에서 성장하고 발전하며 활짝 피어날 것이다. 흠 없이 혁신된 우리의 인격적 존재는 예수 그리스도와 한없이 깊은 교제를 나누며 온갖 기쁨을 누릴 것이다. 그분은 우리 하나님이요 구주요 주님이요 친구이다. 영혼과 육체의 영원한 재결합은 이 영광스러운 삶에 없어서는 안 될 요소이다.물론 그리스도인들도 노화에 들어서면 몸이 짐스럽고 영혼을 제약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 구체적 이유는 탈진, 굶주림, 질병, 회복할 수 없는 인체의 구조적 손상, 돌이킬 수 없는 퇴행성 기능 부전 등 다양하다. 몸에 문제만 없다면 이것도 하고 저것도 즐기겠는데 몸이 막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혼, 즉 사고하고 느끼고 기억하고 상상하고 소통하는 우리의 자아가 육체와 분리되면 이전보다 더 자유롭고 행복해질 것이라고 결론짓는 것은 중대한 오류이다. 인간은 무엇이며 하나님은 왜 우리를 지으셨는가?인류를 구성하는 모든 인간은 육화된 영혼이자 영화된 육체이다. 즉, 정신적 존재이자 물리적 존재이다. 본래 한 쌍의 남녀로 지음을 받은 인류는 하나님에게서 번식의 사명을 받았다. 하나님이 그분의 기쁨을 위해 질서 있게 창조하신 환경의 관리자로 지음을 받았다. 그 일을 할 때 우리는 기쁨을 얻도록 설계되었다. 인간의 찬송과 감사와 섬김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함으로써 말이다. 그런데 인류의 이야기가 시작된 직후 안타깝게도 죄가 인간의 본성을 더렵혔다. 죄는 하나님과 그분의 뜻을 무시하는 반항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구속과 회복의 계획을 가동하셨다. 현재 인류는 바로 그 과정을 지나는 중이다. 모든 개개인이 이 회복에 실제로 동참하는 것은 아니다. 복음에 부딪혀 예수를 믿고 그분의 제자가 되는 사람들만 그것을 누릴 수 있다. 하나님의 계획은 늘 다음과 같다. 이 세상의 삶은 시험적이고 한시적이며 때가 되면 모종의 변화와 이행으로 다른 곳의 더 풍성한 삶에 이르도록 되어 있다. 우리가 아는 죽음과 거기에 흔히 선행되는 명백한 육체적 노쇠는 본래 하나님이 지으신 선한 창조 세계의 일부가 아니다. 창세기 3장에 나와 있듯이 그것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다. 우리 영혼은 무엇인가?인간의 영혼은 곧 인격의 의식적 자아이다. 나를 나로 아는 그 ‘나’이다. 이것은 타고나는 것이며, 인식과 반응과 교류와 관계의 발원지이다. 인지적 의문과 사고, 인간과 상황과 자원에 대한 탐구, 지난 일에 대한 기억과 그 기억이 불러오는 정체감, 감정을 느끼고 계획을 세우는 일, 창의적 예술 작품의 지각과 실연, 진선미의 실체에 대한 이해, 창의적 대인 관계 이 모두와 그 이상이 모두 영혼의 활동이다. 육신의 삶 곧 신체 활동이 끝나도 영혼의 삶은 계속된다. 현재 우리에게 있는 인격적 자의식은 결코 끝이 없으며 오히려 기쁜 쪽으로든 슬픈 쪽으로든 영원히 강화되고 지속된다. 우리의 몸의 목적은 무엇인가?하나님이 우리에게 몸을 주셔서 몸 안에서 그 몸을 통해 살아가게 하신 데에는 두 가지 분명한 이유가 있다. 첫째, 그분의 관리인인 청지기로서 물질계를 다스리는 데 적합하게 하시기 위해서이다. 둘째, 지금 여기서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시기 위해서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몸은 명백히 경험과 표현과 즐거움을 위한 것이다. - 위의 글은 J. I. 패커의 『아름다운 노년』(도서출판 디모데)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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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의 최선 [제526호]
2019/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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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의 최선 누군가를 이끈다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다. 그들과 소통하는 일은 힘이 솟는 일이다. 매일, 혹은 매주 많은 청중 앞에서 설교를 하고, 그 말씀의 원리대로 그들을 이끌어 가는 일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치가 있는 일이다. 그러나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이끄는 지도자의 능력으로 다 되는 일도 아니다. 당신이 영적 지도자라면 이미 이러한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은 자신의 능력의 한계를 깨닫고 그저 맡겨진 사명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졌을 것이다. 당신에게 이러한 태도가 있다면 계속해서 그 태도를 유지하라고 격려해 주고 싶다. 최선을 다하는 것은 지도자의 책임이자, 리더십에서 빠져서는 안 되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다음의 몇 가지 존 맥스웰이 주는 조언은 최선을 다하는 당신에게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첫째, 누구나 나에게 중요한 사람이 될 수 있다.우리는 사랑하고 존경하는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할 것이다. 학창 시절을 돌아보면 좋아했던 선생님도 있고 그렇지 않은 선생님도 있었다. 좋아하는 선생님을 위해서는 항상 최선을 다했고 그 외의 분들에게는 성적을 얻는 데 필요한 정도로만 행동했다. 나중에는 그렇게 일관성 없는 노력은 나의 성공 가능성은 물론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망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 경험을 통해 이런 대책을 발견했다. 모든 사람을 중요하게 여긴다면 항상 최선을 다할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행동에도 변화를 일으켰다.둘째, 어떤 일이든지 중요할 수 있다.인생에서 특별한 순간은 대개 우리가 그 순간을 특별하게 대할 때이다. 평범한 날이 평범한 것은 특별한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풍부한 경험을 갖는 가장 훌륭한 방법은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그것이 순간순간을 특별하게 만든다. 평범한 대화라도 우리가 지대한 관심을 갖고 들으면 더 좋게 들린다. 비범한 노력을 하면 평범한 관계가 변화된다. 주목할 만하지 않은 사건도 우리가 창의성을 곁들일 때 특별해진다. 모든 것이 최선을 다함으로써 더 중요해질 수 있다.셋째, 당신은 누구에게나 특별해질 수 있다.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구인가? 절대 시간을 내 주지 않는 사람인가? 필요로 할 때 함께해 줄 것 같지 않은 사람인가? 물론 아니다. 당신에게 소중한 사람은 당신을 소중하게 대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우리를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게 된다. 다른 사람에게 귀한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면 그들을 귀하게 대하라.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역시 그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넷째, 당신의 재능과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라.“나의 가능성은 하나님이 내게 주신 선물이다. 내 잠재력으로 이루는 것은 내가 하나님에게 드리는 선물이다”라는 말이 있다. 나는 하나님, 다른 사람들 그리고 내 자신에 대해 내 인생에서 가진 모든 선물, 재능, 자원, 기회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믿는다. UCLA의 풋볼 코치였던 존 우든의 “매일을 걸작으로 만들라“라는 말이 이것을 두고 한 말이라고 믿는다. 항상 최선을 다한다면 삶을 특별하게 만들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다른 사람들의 인생으로 흘러들어 가서 그것들도 넘쳐나게 할 것이다.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내셔널 기자클럽에서 자신이 정치적 배경이 부족해 더 나은 웅변가가 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고 말하면서 그 분야의 기술이 부족한 것은 늙은 농부가 소를 팔러 갔던 캔자스의 유년시절을 상기시켜 준다고 말했다. 구매자는 농부에게 소의 혈통, 유지방 생산량, 월별 우유 생산량에 대해 물었다. 농부는 말했다. “혈통이 무엇인지 모르겠고 유지방 생산량도 모르겠습니다만 착한 소이니까 이유라면 가진 대로 전부 줄 겁니다.” 이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우리가 가진 전부를 주는 것 말이다. 이것이면 항상 충분하다.- 위의 글은 Equip의 설립자인 존 맥스웰의 강의 중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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